칼럼니스트 이주호(사단법인 청렴코리아 청년본부장)
◼2025년 세계 청년의 날 특집
다가오는 8월 12일은 ‘국제 청년의 날’이다. 1999년 유엔이 지정한 이 날은 청년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고, 청년의 사회 참여 확대를 장려하기 위한 기념일이다. 그러나 단순한 기념일에 그쳐서는 안 되며, 우리는 이 날을 통해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맞서야 한다.
▲ “청년은 과연 사회의 '청렴'을 이끄는 주체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최근 몇 년 사이 청년층 내부에서도 부정부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취업 과정의 불공정, 입시 특혜, 공공부문 인턴 선발 비리 등은 더 이상 제도나 기성세대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현실이다. 부조리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거나, 기성세대의 관행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일부 청년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청렴 의식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주는 경고다.
이는 단순히 청년 세대의 도덕성 결여 문제가 아니다. 청렴은 교육만으로 길러지지 않으며, 제도와 구조 속에서 체득되는 문화다. 제도와 구조가 부패와 편법을 방조하거나 조장할 때, 어떤 세대도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시 말해, 청년이 ‘청렴하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불공정한 구조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그 구조 속에서 부조리를 재생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2025년 세계 청년의 날 주제는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청년의 진로, SDGs의 현주소”라고 한다. 우리는 이 주제를 마주하며 오늘의 한국 사회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과연 오늘의 청년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말할 자격이 우리 사회에 있는가?”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화려한 청년정책이나 단기적 지원이 아닌, 투명한 절차와 공정한 기회, 그리고 청년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 위에서만 가능하다. 청년에게 청렴한 사회란 곧 희망을 설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 청년과 청렴, 이 두 개념은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
청년이 사회의 청렴을 이끄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래의 권력자가 되기 때문이 아니다. 청년은 ‘공공성과 정의’를 가장 민감하게 경험하고, 사회적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변화하는 집단이다. 청렴은 완성된 성품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체득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따라서 공동체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청년 세대는 청렴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는 핵심 주체다.
그러나 이 명제는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청년 내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청년이 부정부패의 피해자 혹은 감시자였지만, 오늘날 일부 영역에서는 가해자나 방관자로 등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청년은 부패의 피해자인 동시에, 새로운 부패의 가해자가 되고 있다.”
과거 청년은 사회의 부조리에 가장 먼저 분노하고, 가장 앞서 저항하는 집단으로 여겨졌다. ‘청렴’은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무기이자, 청년 세대의 윤리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불편하다.
모 대학 재학생의 오래전 이야기다. 중간고사 시즌이 되면 도서관은 붐비고 분위기도 일순간 바뀌지만, 정작 학생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시험의 난이도'가 아니다. 시험 부정행위, 표절, 편법, 불공정한 평가가 만연한 현실에서 많은 학생들은 정직한 노력만으로는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교활함’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일상의 전략으로 통한다.
수백 명의 수강생을 둔 한 교수는 에세이나 서술형 과제 대신 객관식 시험을 선택하고, 학생들의 리포트는 검색과 복사·붙여넣기로 채워진다. 강의실 책상에는 “선급금은 자산이 아닌 유동부채”라는 낙서가 버젓이 적혀 있고,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 청년은 정말로 우리 사회의 ‘청렴’을 이끄는 주체일까? 아니면 부패와 관행을 답습하는 또 하나의 세대일까?
2000년대 초반 국제투명성기구 한국 지부의 한 충격적인 조사에 따르면, 참여한 중고등학생 중 64%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부정행위를 할 수 있다고 답했고, 41%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법을 지킬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33%는 부패 활동을 목격하더라도 자신에게 해가 없으면 침묵하겠다고 했고, 28.4%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뇌물도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청렴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최근에는 청년에 대한 별도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문제를 외면한 채 방치한다면 심각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국가를 이끌 차세대 청년 10명 중 4명이 이미 부패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도 “10억을 주면 법을 어길 수 있다”는 문항에 국민 23%가 ‘그렇다’고 답했고, “사회생활을 위해 편법은 필요악이다”라는 항목엔 무려 66%가 동의했다. 특히 20대는 ‘10억을 주면 법을 어길 수 있다’는 항목에 30%가 긍정 응답을 하며,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청년 개개인의 윤리의식 문제로 볼 수 없다. 청렴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 구조는 청년에게 청렴을 실천하기보다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편법과 부조리를 ‘배워야 할 기술’처럼 학습시키고 있다.
▲ “청년은 과연 청렴사회의 희망인가, 아니면 청렴 붕괴의 방관자인가?”
‘청렴’은 공직자만의 덕목이 아니다. 청년에게 청렴은 곧 공정한 기회, 사회적 신뢰, 정치의 투명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똑같이 시험을 봐도 기회의 문이 닫혀 있고, 청년의 정신건강은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되며, 청년 문제는 뉴스 속 숫자로만 소비된다.
이럴 때 청렴은 청년에게 결여된 이상이며, 박탈된 기본권이다.
청년은 '기득권 감시자'가 아니라, '미래의 주권자'다.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는 청렴한 사회여야 한다. 그래서 청년정책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윤리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청렴은 지식이나 교육의 결과물이 아니다. 청렴은 제도와 실천 속에서 반복적으로 체득되는 ‘사회적 환경’이자 ‘문화’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 구조는 청년에게 불공정과 체념을 가르치고 있으며, 청렴은 오히려 손해로 여겨진다.
청년 구직자 커뮤니티에선 “면접관이 낙하산이면 포기해라”, “어차피 내정자 있는 자리니까 경험 삼아 가라”는 체념 섞인 조언이 공유된다. 이는 청년이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청렴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방기이자 제도의 실패다.
최근까지 되풀이 되고 있는 공공기관 인턴 등의 채용 과정을 봐도 직원 자녀가 사전 내정된 채 지원하고 최종 선발된 사건은 단순한 절차 위반이 아닌, ‘기회 독점’이 비공식적으로 세습되고 있음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고위직 입시비리 사태 이후에도 대입 비리, 생기부 조작, 봉사활동 위장 등은 일부 청소년과 학부모에 의해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공정하지 않은 경쟁이 아니라, 비윤리를 수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청렴한 사회는 부패가 전혀 없는 사회가 아니다. 부패를 감지하고 시정할 수 있는 시민 역량이 살아 있는 사회다. 그리고 그 시작은 청년의 자발적 참여와 책임 있는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다가오는 국제 청년의 날, 우리는 청년을 단지 ‘지원할 대상’이 아니라, 청렴한 사회를 이끌어갈 파트너로 대우해야 한다.
청렴은 법과 제도 이전에 ‘문화’다. 그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청년이 청렴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청렴을 만들어가는 시대. 지금이 바로 그 시작점이다. 그 신뢰는 투명한 행정에서, 공정한 기회에서, 존중받는 참여에서 비롯된다.
2025년 세계 청년의 날. 우리는 단지 청년을 응원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청렴한 오늘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동체. 그것이 진정 국제 청년의 날이 기념해야 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