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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의 산 증인 김준배 옹(翁)

기사입력 2018-04-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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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의 Role Model


▲ 산책을 즐기는 김준배 옹
본 기자가 송파신문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알게 된 분이 오늘 인터뷰 주인공인 김준배 옹이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7년 전인데 그 당시 우리신문사 인쇄를 ()광세당인쇄소에서 하였는데 그 인쇄소 회장님이셨다.


그 후 본 기자는 자연스럽게 김준배 옹을 뵈올 기회가 많았다. 그동안 접해오면서 늘 존경스럽고 평소 한마디라도 더 얘기를 듣고 싶은 분이었으며 이런분이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요즘 각박한 세태에 좋은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게 인터뷰요청을 하였으나 수차에 걸쳐 사양하셔서 포기할까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지난 31일 김준배 옹께 세배를 가신다고 하신분(문윤원 현 송파구의원)이 있어서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정으로 얽힌 인간적인 신뢰와 존경이 담겨져 있는 세배라 생각하고 본기자도 평소 잘 알고 지내온 터라서 같이 참석하게 되었다.


이때 인터뷰를 간곡히 부탁드렸는데 이제야 허락을 하시면서 쑥스러우니 간단하게 짧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o 일생을 송파에서만 살아오셨다고 하시는데 말씀해 주시죠


김준배(95) 옹은 1925년에 지금의 방이동 315번지 백제고분 옆 동네에서 넉넉한 천석지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했다.


태어날 당시 행정구역이 광주군 중대면 방이골이었다. 당시 방이골(지금의 방이동)은 윗말, 가운데말, 아랫말, 넘어말, 건너말 등으로 구성되어 불리다가 방이리가 되었으며, 1963년도에 이르러서야 서울시의 대대적인 구역확장이 이루어질 때 성동구 왕천동으로 되었다가 75년 강남구, 79년 강동구, 881월에 오늘의 송파구 방이동이 되었다고 연도까지 총명한 눈빛으로 역사 얘기 하듯이 상세하게 설명하셨다.


그중에도 대홍수사건, 삼전도에 얽힌 사연 등 많은 얘기를 하셨다.


 


o 1세기(향년 95)를 살아오신 과정을 얘기하신다면


시골이지만 넉넉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크게 어려움은 겪지 않고 자랐으며 중대초등학교(그 당시에는 송파지역에 유일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도 하고 장사도 해보면서 살아오던 중 1964년도에 성동구청 송파출장소가 신설되었는데 그때부터 방이동 동사무소근무를 하다가 72년도에 방이1동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고 했다. 방이1동 일을 한 20년 성실히 하다 보니 자연히 이웃주민들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되지 않았나 하고 겸손하게 얘기했다.


이후 광세당인쇄()를 운영하면서 송파구청 문화재위원, 구청지명위원으로 구청일에 봉사했다.


95년도에 방이동 왕천경로당 회장, 2004년도에 ()대한노인회 송파구지회장 및 서울연합회 운영위원을 맡아오면서 노인지위향상 등 노인들의 복지향상을 휘한 일에 성실했다.


그동안 성실히 봉사한 노력을 인정받아 국무총리상, 대통령국민포장 등 많은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오면서 송파를 한 번도 떠나 본적이 없이 오로지 방이동에서만 살아왔다고 하면서 지금생각하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o 30년도 가까이 세배 오는 후배들의 얘기를 해주신다면


글쎄요, 80년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30년 가까이 후배들로부터 세배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보면 부끄럽기도 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60년대 초 지금의 방이1동 주민센터 옆 방이지구대 파출소가 동사무소 자리였는데 주변은 모두 논밭이었고 포장도 안되어 있을때인데 본인의 집도 100여 미터 떨어진 곳이라 동직원들과 한 식구같이 드나들면서 식사도 하고 통행금지가 있을때니까 일이 많으면 자고가기도 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동장을 퇴직하기까지 20여년을 생활하다보니 정이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얘기를 하시면서 5년 전에는 타계하신 김경옥 여사(당시90)님이 궂은 일 마다않고 받아줘서 고생이 많으셨다고 회고하기도 하셨다.


한 가지 자신 있었던 것은 직원들이 잘못해서 징계나 책임을 받게 되면 동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해서 직원들을 보호해준 것이 직원들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정으로 살았던 시절로서 문화가 발달된 지금보다도 그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10여명(처음에는 20)이 세배하러 오는 것이 싫지 않으며, 오는 후배들도 밝고 기쁜 표정으로 오니까 좋다고 했다.


별로 한일도 없는데 이런 축복을 받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세배하러 오면 대접은 큰아들(김종대, 전 송파구의원)이 맡아서 한다.


큰아들과 세배하러 오는 분들은 동년배쯤 된다.


본 기자가 생각하기에는 대한민국에서 단체로 30년 가까이 세배 오는 일은 김준배 옹 한 분 뿐이 아닌가 싶다.


 


o 가족사항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본인의 처는 박경옥 여사로 5년 전에 향년90세로 생을 마감했는데 다시 결혼을 한다면 다시 박경옥 여사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시골의 큰살림을 맡아하면서 고생이 많았을텐데 평생 얼굴을 붉히거나 내색한번 하지 않았다고 했다.


슬하에는 23녀를 두었는데 모두 제할일을 잘하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했다.


 


o 요즘 생활은 어떻게 소일하시나요?


세베 온 후배들이 생일축하선물을 드리고 있다(좌측 첫번째가 김준배 옹)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부회장, 송파구노인회 부지회장, 방이동왕천경로당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송파구협의회 자문위원으로서 봉사하고 있으며, 지금도 송파구의 크고 작은 행사에는 초대를 해줘서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그 외에는 늘 조용히 생각하면서 산책하고 때로는 읽을 만한 책을 골라 독서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다행히도 아직은 건강이 좋아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불편한점이 없고 정신이 맑으며 시력도 좋은 편이라고 복을 타고 난 것 같다고 했다.


한마디 자랑한다면 본인의 큰아들 종대,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사는데 지극정성으로 자기를 돌보니까 미안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고 하며 큰아들과 며느리 손자·손녀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했다.


 


o 생활의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특별한 좌우명은 없고 남에게 피해안주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법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데 아침에는 희망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며 낮에는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돌이켜보며 반성하고 기도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과 얼굴 붉히고 다퉈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본기자도 17년동안 접해오면서 늘 여유있고 온화한 표정에 감동은 받았지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인내하면 된다고 했다.


돈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o 김준배 옹,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Role Model


김준배 옹과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난 글귀가 김준배 옹의 살아온 여정이 바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가 싶다.


명예를 얻고 싶다면 명예만큼 의무를 다해야 된다는 것, 대접을 받기위해서는 대접받을만큼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것.


요즘 부를 쥐거나 권력을 잡은자가 갑질을 일삼고 당연한 행동처럼 생각하는 시대에 김준배 옹의 삶의 여정은 각박한 세태에 사는 우리모두에게 신선하고 보석같은 돈주고도 못사는 귀한 귀감이 되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오늘은 무언가 값진 공부와 선물을 받은 마음 푸근함을 느끼면서 인터뷰를 마무리 한다.


김태평 기자 songpanews@naver.com


송파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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